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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쉬는 날 도서관에 갔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의 읍내는 평소보다 넓어 보인다. 차를 세워 두고 면사무소 앞 정류장 쪽으로 걸었는데, 장날이면 좌판과 손수레가 차지하던 자리에 바랜 주차선만 반듯하게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류장 의자 아래로 마른 전단 한 장이 들어갔다 나왔고, 맞은편 철물점 앞에는 묶어 둔 빗자루가 가지런히 기울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표 옆 투명 덮개에는 오래된 테이프 자국이 겹쳐 있었고, 그 위로 오전 햇빛이 비스듬히 걸렸다. 조용한 날이었다. 정류장 뒤편의 작은 화단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한 뼘쯤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종이컵이 돌 틈에 끼어 있어 주워 들었더니 안쪽에 빗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근처 쓰레기통까지 몇 걸음 옮기는 동안 빈 도로를 화물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갔고, 차가 사라진 뒤에도 엔진 소리가 건물 사이에 잠깐 머물렀다. 장날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였다. 약국 유리문에는 휴무 안내가 붙어 있었고, 옆 가게 차양 아래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앞발을 모은 채 졸고 있었다. 읍내가 통째로 낮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 갈 생각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있었지만 서둘러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평일 낮의 빈 거리는 볼 일이 끝나면 곧장 차로 돌아가던 때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서, 괜히 한 블록을 더 돌아보게 된다. 떡집의 불은 꺼져 있었고 유리 안쪽에 놓인 빈 쟁반만 보였으며, 문구점 앞 회전 진열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반 바퀴씩 늦게 움직였다. 영월에서 왔다는 택배 차량이 골목 입구를 잠깐 막았다가 금세 빠져나갔다. 길을 건너면서 신호등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끝까지 바라봤다. 급할 것은 없었다. 도서관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자동문이 열리자 바깥의 건조한 바람 대신 종이와 바닥 세정제 냄새가 섞인 공기가 닿았고, 신발 밑창에서 작게 마찰음이 났다. 안내대 직원은 반납된 책에 도장을 찍고 있었으며 어린이 자료실 쪽에서는 의자를 끄는 소리가 한 번 들렸다. 나는 가방에서 지난번에 빌린 책 두 권을 꺼냈다. 한 권은 모서리가 조금 닳아 있었고 다른 한 권에는 읽던 자리를 표시하려 끼워 둔 영수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참만에 펼쳐 본 종이였다. 반납 처리된 책이 수레에 실리는 동안 창가 자리에 앉아 빈 거리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 지나온 정류장의 초록 지붕이 건물 사이로 작게 보였고, 그 앞에는 어느새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버스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는지 그 사람은 시간표를 보고도 자리에 앉지 않은 채 도로 끝을 자꾸 살폈다. 책을 고르러 왔는데 한동안 서가로 가지 못했다. 유리창 안쪽은 따뜻했고 바깥의 깃발은 쉬지 않고 펄럭여서, 같은 오후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문제는 책이었다. 빌려 갈 책을 세 권까지만 고르기로 했는데 손에 든 것은 금세 다섯 권이 되었다. 제목을 읽다가 전에 읽은 책과 비슷해 보이면 다시 꽂고, 표지가 지나치게 새것이면 몇 장 넘겨 본 뒤 아래 칸에 내려놓았다. 연구실에서 종일 짧은 문장과 숫자만 들여다본 날에는 긴 이야기를 집어 들고 싶어지지만, 막상 집에 가져가면 첫 장에서 멈출 때도 많다. 오늘은 얇은 산문집 한 권과 오래된 소설 두 권을 남겼다. 책등에 붙은 분류표가 여러 번 손을 탄 흔적으로 희미했고, 대출 기계 위에는 누군가 연필을 두고 갔다. 그것으로 됐다. 도서관을 나왔을 때는 정류장 앞에 서 있던 사람도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빈 거리에는 오후 햇빛이 조금 더 길게 누워 있었고, 닫힌 가게 셔터의 굴곡마다 밝은 줄과 어두운 줄이 번갈아 생겨 있었다. 장이 없는 날에는 살 것도 구경할 것도 적지만, 대신 내가 걷는 속도가 또렷하게 느껴진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종이봉투 속 책 모서리가 허벅지에 몇 번 부딪혔고, 정류장 의자 아래를 맴돌던 전단은 아까와 다른 쪽 배수구에 걸려 있었다. 주차장에는 내 차를 포함해 세 대가 남아 있었다. 시동을 걸기 전, 반납 영수증을 접어 가방 안쪽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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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느티나무 1일 전
장 안 서는 날 읍내가 넓어 보인다는 말이 참 정확하네요
📖 책방골목 2일 전
바랜 주차선과 빗자루, 그림이 그려집니다. 도서관은 조용하셨나요
🌧️ 빗소리수집 3일 전
정류장 의자 밑 전단 한 장이 들락거리는 장면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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