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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던 정류장의 오후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각에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 차를 세웠다. 반납할 책을 뒷좌석에 실어 둔 채 사무실로 가 버린 것이 벌써 사흘째였고, 오늘은 아예 가방 위에 올려 두고 나왔다. 버스가 들어오는 시간도 아닌데 정류장 의자에는 낡은 장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인지 누가 잠깐 잊고 간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괜히 가까이 가지 않고 차 안에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맞은편 화단에는 여름내 무성하던 잎이 반쯤 꺾여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줄기끼리 가볍게 부딪쳤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정류장 뒤 게시판에는 지난달 행사 안내와 농기계 점검 날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모서리가 들린 종이는 테이프를 덧댄 자리까지 누렇게 변했고, 그 아래 새로 붙인 공고만 흰빛이 또렷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반납할 책 두 권을 챙긴 뒤 장바구니를 다시 한번 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안에는 접은 우산과 빈 반찬통이 들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작은 수건이 묶여 있었다. 누군가 다시 찾으러 올 모양새라 의자 끝으로 밀어 두기만 했다. 버스 한 대가 정읍 쪽으로 지나가며 먼지를 낮게 일으켰고, 정류장은 금세 전과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읍내 도서관까지는 막히지 않으면 이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낮은 창고를 지나고, 신호가 하나씩 늘어나는 지점부터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오전에 정리하던 검토표의 빈칸이 자꾸 떠올랐지만 운전하는 동안에는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결론을 낼 수 없는 일을 차 안까지 데려오면 주차할 때도 마음이 부산해진다. 조수석에서는 책 모서리가 회전할 때마다 종이봉투를 긁었고, 그 사소한 소리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오늘도 같은 길이었다. 도서관 앞 거리는 장이 서지 않는 날이면 공간이 조금 남아도는 듯 보인다.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 앞에는 빈 플라스틱 상자가 포개져 있었고, 평소 좌판이 들어서는 자리에는 빗자루 자국만 길게 남았다. 주차선 안에 차를 넣고도 바로 내리지 않은 채, 전면 유리에 붙은 작은 먼지들이 햇빛을 받는 것을 보았다. 집에서는 남편이 오래된 수납장을 옮겨 보겠다고 했는데 아침에 벌여 둔 모양 그대로일 가능성이 컸다. 돌아가면 거실 한가운데 놓인 서랍부터 같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났고, 그러자 반납함까지 걷는 일이 갑자기 아주 간단해졌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대 옆 반납 기계에서 짧은 확인음이 났다. 첫 번째 책은 바로 처리됐지만 두 번째 책은 바코드를 몇 번이나 다시 읽혀야 했고, 나는 책등을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 내린 뒤 방향을 바꿔 넣었다. 대출 기간을 연장해 놓고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중간에 꽂아 둔 영수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펼쳐 보니 한 달 전 읍내에서 산 두부와 대파 가격이 적혀 있었다. 책보다 그날 저녁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그래도 영수증은 버리지 않고 가방 안쪽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반납을 마친 뒤에는 서가를 한 바퀴만 돌 생각이었다. 새로 들어온 책 앞에서 오래 멈추지 않으려고 손을 뒤로 모았는데, 표지가 어두운 산문집 한 권을 보고 결국 꺼내 들었다. 몇 쪽을 넘기는 동안 창가 자리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는 신문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나는 책을 빌릴지 말지 정하지 못한 채 창밖의 빈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장날이면 천막과 사람 사이로 겨우 보이는 건너편 간판이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 있었다. 비어 있으니 더 낯설었다. 결국 산문집은 다시 꽂고 얇은 사진책 한 권만 빌렸다. 읽으려는 마음보다 집에 가져가 식탁 한쪽에 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그런 이유도 대출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 그림자가 길어져 주차선 두 칸을 비스듬히 가르고 있었다. 차 문을 열기 전 가방 속 영수증을 다시 만져 보았고, 반납할 때 빼놓은 것은 없는지 괜히 뒷좌석까지 확인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면사무소 앞을 다시 지나게 된다. 장바구니가 그대로 있을지부터 보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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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고요한오후 2일 전
주인 없는 장바구니를 차 안에서 바라보는 시간, 이상하게 조용했다는 말이 남네요
🌱 밭머리 3일 전
반납 책 사흘째 뒷좌석… 저는 일주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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