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문을 닫으면 시작되는 목소리
차 문을 닫고 라디오를 켜면 늘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정확히는 늘 같은 시간에 맞추려 한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그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동안 차 안에 있게 된다. 첫 인사보다 먼저 흐르는 짧은 음악을 들으면 오늘도 제자리에 왔다는 기분이 든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찾아 들은 적이 없다. 다시 듣기 목록에 넣어 두지도 않았고, 방송 내용을 따로 검색해 본 일도 없다. 차 안에서만 충분하다.
진행자의 목소리는 낮지도 높지도 않고, 문장 끝을 조금 남겨 두는 버릇이 있다. 웃을 때도 크게 터뜨리지 않고 숨을 한번 들이켰다가 짧게 웃는다. 처음에는 그 호흡이 어색해서 다음 말을 자꾸 기다리게 됐다. 이제는 그 작은 틈까지 방송의 일부처럼 들린다. 말을 멈춘 동안 송풍구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섞이고, 바깥의 희미한 소음이 유리 너머로 지나간다. 그 몇 초가 좋다.
방송은 대체로 비슷한 순서로 흘러간다. 시작 음악 뒤에 짧은 이야기, 사연 두어 개, 오래된 노래 한 곡, 다시 목소리가 이어진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밋밋할 만한 구성인데, 나는 그 순서가 조금만 달라져도 먼저 알아차린다. 오늘은 사연이 일찍 나왔구나, 평소보다 노래가 길구나 하고 생각한다. 익숙함은 그런 식이다.
한번은 방송 중간에 잡음이 끼면서 목소리가 잘게 부서진 적이 있었다. 볼륨을 낮췄다가 다시 올리고, 주파수가 흐트러졌나 싶어 손을 뻗었지만 화면의 숫자는 그대로였다. 몇 마디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뭉개지더니 갑자기 선명해졌다. 정작 놓친 내용은 별것 아니었을 텐데 그날은 계속 앞부분이 궁금했다. 진행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사연을 읽었다. 나만 잠깐 밖에 남았다.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이름 대신 짧은 별칭으로 불린다. 별칭은 금세 잊는데 사연 속 한 문장만 이상하게 오래 붙어 있는 날이 있다. 서랍을 열었다가 왜 열었는지 잊었다는 이야기, 대답할 말을 늦게 떠올렸다는 이야기처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조각들이다. 나는 그 문장을 듣고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방송이 다음 순서로 넘어간 뒤에 한 번 더 떠올린다. 목소리보다 늦게 남는다.
선곡은 아는 노래와 모르는 노래가 반반쯤 섞인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제목을 확인하지 않고 첫 소절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린다. 기억한 전주가 맞으면 작은 답을 맞힌 기분이 들고, 틀리면 비슷한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한참 더듬는다. 모르는 노래는 더 편하다. 가사를 붙잡지 않아도 되고, 제목을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다. 흘러가게 둔다.
참, 이 프로그램은 차 밖으로 가져가는 순간 모양이 달라질 것 같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목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울 것 같고, 넓은 공간에 틀어 두면 문장 사이의 정적이 너무 커질 듯하다. 차 안에서는 소리가 앞유리와 천장에 한번 부딪혀 둥글게 돌아온다. 좌우에서 나뉘어 나오던 음악도 어느 지점에서는 한 덩어리가 된다. 방송을 듣는다기보다 잠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에 가깝다. 문을 열면 끝난다.
프로그램이 마칠 때 진행자는 내일의 내용을 길게 예고하지 않는다. 정해진 인사를 하고 끝 음악이 올라오면 목소리가 그 아래로 천천히 잠긴다. 나는 끝까지 듣는 날보다 중간에 끄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아쉽지는 않다. 다음에 라디오를 켰을 때 어제의 문장이 이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조금씩 잘린 채로 남는다.
어느 날에는 같은 프로그램이 아닌 줄 알고 잠시 화면을 확인한 적도 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밝았고, 첫 음악도 낯설어서 다른 방송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몇 분 뒤 익숙한 코너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손을 거뒀다. 같은 목소리도 날마다 똑같이 들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방송이 달라진 건지 듣는 쪽이 달라진 건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차 안이 조용한 날이면 라디오를 켜기 전의 몇 초가 유난히 길다. 버튼을 누르면 언제나처럼 목소리가 나올 것 같다가도, 전혀 다른 노래나 광고가 먼저 흘러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까지 채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다. 기다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신호가 닿고 음악이 걷히고, 마침내 익숙한 첫 문장이 들린다. 그제야 소리가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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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만 충분한 목소리, 다시 듣기에 넣지 않는 마음이 이해됩니다